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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독후감] 파리대왕 , 인간이 간직한 악(惡)에 관하여

by Hailey__ 2023. 2. 21.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저는 난생처음 듣는 제목이었지만, 제가 무식했던가 봅니다. 이는 1954년에 발표된 윌리엄 골딩의 소설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아 문학계에도 큰 획을 그은 영국의 소설입니다. 소년들이 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15소년 표류기>와도 자주 비교가 되곤 합니다. 넷플릭스의 미국 드라마 <더 소사이어티 The Society> 는 바로 이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이름부터도 독특한 <파리대왕>, 과연 어떤 작품일지 한번 알아볼까요?  

 

 

 

 

<파리대왕> 줄거리와 결말 

 

  작품의 시대상은 어느 미래의 핵 전쟁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난 가던 영국의 소년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며 무인도에 표류하게 됩니다. 어른은 하나 없이 소년들로만 구성된 무리. 소년들은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장부터 선출하게 됩니다. 가장 성숙해 보이고 잘생긴 금발머리의 소년 '랠프'가 어렵지 않게 대장으로 선출되며, 동시에 대장 자리를 노리던 빨간 머리의 소년 '잭'은 사냥 부대를 이끄는 이인자가 됩니다. 소년들은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립하고 보금자리를 꾸려나가며 무인도의 표류 생활을 지속합니다. 대장 랠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봉화'입니다. 섬에 연기를 피워올려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잭은 당장 오늘의 사냥감에 눈이 팔려있습니다. 잭과 사냥 부대가 멧돼지 사냥에 눈이 팔려 봉화를 꺼트리는 사건을 계기로, 랠프와 잭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와중에 소년들은 산속에서 만난 '짐승'이라는 유령 같은 존재로 인해 두려움에 잠식되고 맙니다. 서서히 금이 가던 무인도 생활에서, 잭은 결국 뜻이 맞는 몇몇 소년을 빼와 새로운 무리를 만들게 됩니다. 합리적인 규율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봉화'를 중시하는 랠프, 그리고 고기와 생존에 집착하며 '사냥'을 이끄는 잭. 두 무리의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섬에서는 최초의 살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극한의 원초적인 상황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작가는 세세하게 그려냅니다. 수차례의 대립 끝 혼자가 된 랠프는 잭의 무리를 피해 도망치다, 섬의 연기를 보고 찾아온 영국 해군에 의해 구조되며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인간의 판단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파리대왕>은 인간의 본성, 그중에서도 악(惡)에 집중합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그저 동물에 불과합니다. 사실 동물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간단한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그들을 지배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선과 악을 규정짓고, 내 안의 동물적인 본능과 악함을 꽁꽁 숨긴 채 '인간'이라는 가면을 쓰도록 교육받습니다. 그렇다면, 사회라는 최소한의 틀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얼마나 오래 이성과 도덕심을 지킬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어떤 순간에 인간은 꽁꽁 숨겨놓았던 악한 본성을 드러내게 될까요?

 

  <파리대왕>의 소년들 역시 처음에는 그들 나름의 건설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은 그저 굴러다니는 소라 껍데기에 '발언권'이라는 질서와 규칙을 부여한 후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어나갑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라는 형체 없는 연기가 소년들 사이를 휘감은 순간, 질서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 두려움은 각기 다른 형태로 소년들의 눈을 서서히 멀게 합니다.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나약해집니다.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산 위의 '짐승'은 눈 앞에 실재하고 있는 '소라 껍데기'를 파괴합니다. (갑자기 주식에서의 패닉 셀이라는 용어가 생각납니다. 누가 그런 짓을 하나 생각했는데, 바로 저였습니다.)

 

  두려움이란 결국 '알지 못함' 즉,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워하는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는 순간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소년들은 두려움의 실체를 유일하게 파악한 사이먼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두려움에 눈이 먼 인간들은 그들의 유일한 구원책마저 스스로 파괴하게 됩니다. 윌리엄 골딩이 바라보는 인간상에 대한 시선이 명징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의 시선에서 인간은 악함을 간직한 동물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의 판단에 있어서 이성은 생각보다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등장인물 중 '피기'를 통해 이를 한 번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피기는 작고 통통하고 보잘것없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등장인물 중 가장 혜안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말은 소년들 사이에서 큰 무게감을 가지지 못합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골딩이 파리대왕에서 피기를 우스운 이미지로 만든 것 역시 이러한 인간의 반지성주의적 모순을 꼬집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과 비이성적인 모습을 비추던 <파리대왕>은 의외로 시시해 보이는 결말을 맞습니다. 소년들은 섬의 연기를 보고 우연히 정박한 해군들에 의해 구출됩니다. 이들이 굳이 '해군'에 의해 구출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그 시대에서 큰 배를 가지고 바다를 떠돌 수 있는 존재가 그리 많지는 않겠습니다만.. 소년들은 드디어 이성으로 무장한 어른들에 의해 구출되지만, 동시에 그들은 전쟁이라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현실 속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들이 탄 해군의 배는 또 다른 랠프, 혹은 또 다른 잭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파리대왕이 사이먼에게 자신은 "너희들의 일부분" 이라고 말했듯, 인간 집단은 절대 이 야만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비극적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파리대왕>은 그저 소년들의 우연한 에피소드를 그리는 것이 아닌 인간 집단 전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야만성을 간직한 인간 사회에서, 동물이 아닌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윌리엄 골딩의 비극적 결말처럼, 이 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아직 인류애가 살아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만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극한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늘 내 안의 악이 나를 지배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고, 두려움을 실체화하여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민음사 번역본은 피하시길

 

  개인적으로 <파리대왕>은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딱딱하고 어렵게 꼬여진 번역체가 큰 진입장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파리대왕>의 민음사 번역본은 독서가들 사이 악명이 높습니다. 불필요한 한자어와 평소에 쓰이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을 남발해 독서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소년들의 대화가 마치 노인들의 대화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파리대왕>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출판사 '민음사' 번역본은 꼭 피하시길 추천드립니다.